저는 예전에 ‘국시 거부 의대생 구제 반대’ 청원을 올렸던 한 시민입니다.
과거 청와대 국민청원처럼 시민들이 뜻을 모아 공적으로 기록할 통로가 사라진 지금, 이렇게나마 무너져가는 ‘사회적 신뢰’에 대한 위기감을 함께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제 기준은 하나입니다.
공공의 신뢰를 정략으로 흔드는 일에는, 어느 쪽이든 반대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글은 특정 정치 세력이 반복해 온 ‘패턴’을 제 나름대로 한 번에 정리해 보려는 기록입니다.
어느 한쪽을 편들거나 비난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신뢰를 이렇게 다뤄도 되는가’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상식적인 시민의 눈높이에서 함께 생각해 보자는 취지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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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정치에 대하여
• 우물에 독을 타는 정치: 당장의 이익을 위해 사회적 신뢰(우물)를 오염시키는 행위는 공동체에 대한 치명적 배신입니다. • 바이러스보다 무서운 ‘불신’의 씨앗: 전 정부의 방역을 ‘정치방역’이라 매도하더니, 집권 후엔 똑같은 조치를 ‘과학방역’이라 포장하며 태세를 전환하는 이중성을 보였습니다. • 이기면 민심, 지면 조작: 선거 승리는 민심이라 치켜세우고 패배는 부정선거라 우기며,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를 흔들고 있습니다. • 이익은 그들에게, 대가는 우리에게: 그들이 만든 불신의 대가는 결국 국민의 생명 위협과 국론 분열이라는 피해로 고스란히 돌아옵니다. • 헌정 회복을 가로막는 ‘입틀막’: 12·3 내란의 본질을 흐리고, 책임을 묻는 국민의 입을 틀어막는 것은 또 다른 헌정 파괴입니다.
• 석연치 않은 기각, 염치없는 공격: 상식 밖의 영장 기각을 면죄부 삼아, 정당한 수사를 하려던 특검을 도리어 공격하고 있습니다.
• 한결같은 기적의 논리와 이율배반: 특검의 수사가 위법하지 않은 것이 상대에 대한 '특혜'라 우기는 기적의 논리를 펼칩니다.
• 특검은 피하고 여론은 흔들고: 정작 본인들은 수차례 특검법을 거부하고, 자료 제출 거부와 참고인 출석 불응 등 철저히 비협조로 일관했으면서, 이제 와서 상대에게 특검을 요구합니다.
• 범인을 찾습니다: 수차례 반복되었던 특검 거부. 그들은 그 전에 "특검을 거부하는 자가 범인"이라고 수차례 말했던 바가 있습니다.
• 우리는 기억하고,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이것이 정치적 소신인지, 공동체에 대한 배신인지 묻고 기억해야만 다음 세대에 온전한 신뢰를 물려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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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마을의 우물에 누군가 독을 탔다고 가정해봅니다.
실수든 악의든, 그 책임은 무겁습니다. 하물며 ‘고의’였다면 이는 인간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공동체에 대한 치명적인 배신입니다.
지금, 한국 정치에는 정파적 이익을 위해 ‘사회적 신뢰’라는 공동의 우물에 독을 타는 세력이 존재합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우리를 가장 괴롭힌 것은 바이러스보다 ‘확인되지 않은 공포’였습니다.
팬데믹이라는 초유의 상황에서 국민이 느끼는 불안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내 가족의 생명이 달린 일에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